개밥의 개똥철학



PD수첩 제작진에게도 당연히 '의도'가 있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당연히 있습니다.
미국 소고기의 위험성을 알리려는 의도가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도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의무입니다.

-1-

PD수첩 제작진들의 이메일 내용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압수수색영장으로 이메일을 압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한 논쟁지점이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합니다.
'피의자의 이메일 내용을 검찰이 공개하는 것이 불법이냐 합법이냐'도 중요한 논쟁지점이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합니다.

검찰이 공개한 내용만 보면, 'PD수첩 제작진들은 MB정권에 적대심을 품고 있었고, 정권을 무너뜨릴 의도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PD수첩 내용은 신뢰할 수 없으며 명백한 명예훼손' 으로 귀결됩니다.

한 마디로 '의도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겁니다.

-2-

'기획기사'란 말을 아십니까?

말 그대로 기사를 기획하는 겁니다.
기획이란 게 뭔가요? '의도'를 가지고 그 의도에 맞는 일을 계획하는 겁니다.
기획기사란 '의도'를 가지고 그 의도에 맞는 기사를 쓰는 겁니다.
('의도'란 말이 불편하면 '주제의식' 정도로 대치하도록 합시다.)

신문을 펼쳐보세요.
여러분이 보고 있는 기사 중 상당수는 '기획기사'입니다.

단순한 사건사고 기사 같아 보여도, 그 기사에는 '기획의도'가 있습니다.
왜 그 사건을 선택해서 기사화했으며, 어떤 분량으로 어떤 논조로 보도할 것인지가 모두 '기획'입니다.

언론사로 그냥 제 발들고 찾아오는 기사는 없습니다.
모두가 기자가 발로 뛰고 취재하여 쓰는 기사지요.
어떤 사건을, 어떤 현상을 '발로 뛰고 취재하여' 기사를 쓸 것인지가 모두 '의도'입니다.

-3-

얼마전에 종영되었던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에 보면 세중일보 정치부 기자인 백기자란 사람이 나옵니다.

이미지 출처 : [그저 바라보다가] 홈페이지

이 사람 기자인지 정치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특정 후보의 흠집 캐기'에 열중합니다.
알고보니, 이 사람 개인적인 원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인 김정욱이 판사시절 의료사고 재판에서, 병원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유리한 판결을 내려준 겁니다. 백기자의 형이(아버지였나?) 의료사고 피해자였구요.

그 뿐인가요. 서울시장 후보 김정욱은 극동일보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아들 김강모를 극동일보 회장의 딸과 강제로 결혼을 시킵니다.
그리고 김강모를 극동일보 사장 자리까지 끌어올리지요.

네. 분명히 '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설정을 보고 "비현실적이야" 라며 굳이 비판하려 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기자 개인의 원한관계는 사실 이야기꺼리도 안 됩니다.
기자 개인의 원한관계로 기사를 만들어서 신문에 뿌릴 수 있다면, 그건 그 기자가 꽤 인정받는 기자란 뜻일 겁니다.
실제로 기사가 지면에 나가기까지는, 엄청난 부장-국장-사주 등의 복잡한 게이트키핑을 거쳐야하니까요.

더 무서운 건 기자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주도하는 경우죠.

"어느 신문사 사장은 누구 라인에 섰다더라"
"어느 신문사 정치부장이 누구랑 가깝다더라"

이런 소문 한 번도 안 들어보셨다면,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사시는 겁니다.

-4-

오죽했으면,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마저 이런 말을 합디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분... 미디어법 개악의 선봉에 계신 분이시지요.

"검찰수사 결과발표 단계에서 이메일 내용을 공개 한 것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할 수 있지 않나 이런 걱정을 한다"
(관련기사 : 한나라당, 검찰 이메일 공개는 "알 권리…정당하다" [프레시안] )

정말로 그런 생각인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진 의원님의 기자 시절 이메일을 열어본다면
PD수첩 제작진 못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은, 저만의 망상일까요?
제 발 저려 저러시는 거란 생각은 억측일까요?

이러니 여당 의원들도 국내 포털의 메일을 쓰지 않고, 지메일을 쓴다고 고백할 정도죠.
(관련기사 : 남경필 "검찰이 인권침해"…정두언 "나도 '지메일'사용" [프레시안] )

-5-

기자는 개인의 소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양심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습니다.
심지어 그것은 공정한 재판을 진행해야 할 판사에게도 주어지는 것이고,
공정한 선거를 주관해야 할 선관위 직원에게도 주어지는 겁니다.

개인의 소신을 자신의 일에 어느 정도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소신 없이 그저 주는대로 받아쓰는 기사가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소신 없이 그저 법조항을 문맥적인 의미대로 해석하는 판결이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ex 삼성 에버랜드 편법 승계 재판)

모든 기사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왜 그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가,
왜 그 기사를 이런 관점에서 썼는가,
왜 그 기사를 이 지면의 이 위치에 배치했는가,
왜 그 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는가

그 모든 것이 '의도'입니다.

따라서, 기사를 읽는 우리는
그 기사가 '어떠한 의도'에서 작성되었는가를 충분히 따져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의도의 해석은 소비자의 몫입니다.

(하다못해 드라마에도 기획의도가 있습니다. 드라마 홈페이지 가 보면 왜 이런 드라마를 기획했는지 '의도'가 나오더라구요.)

기사를 쓰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는
'의도를 갖지 말고 기사를 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익적일 것'과
'사실 관계를 고의로 왜곡하지 말 것'입니다.

PD수첩의 의도가 공익적인지 아닌지 여부,
PD수첩이 사실 관계를 고의로 왜곡했는지 여부,

이것만 따져보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여부는 사법부에서 가리면 될 일입니다. 검찰이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만일, 정부가 생각하기에 'PD수첩의 의도'가 공익적이지 않고, 사실관계를 고의로 왜곡했다고 생각한다면,
정부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궁금합니다.
정부는 왜 '허위사실유포'로 PD수첩을 고발하지 않고,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습니까?
(명예훼손은 허위가 아닌 '사실'에 의해서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6-

작가가, PD가 평소에 어떤 정치적 소신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의도를 관철하기위해 고의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PD수첩이 그 '선'을 넘었는지 아닌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린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PD수첩 제작진 중 일부는 홍정욱에게 적대심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사실관계'를 확보하지 못했겠지요.

의도를 가지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언론들이 수두룩합니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이 그들에 비해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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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g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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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PD수첩 제작진에게는 '의도'가 있었다

    Tracked from 이글루스 블로거들의 살아있는 뉴스비평 2009/06/23 17:29  삭제

    개개인의 이메일을 공개하는 것이 권리라고 한다.귀신 시나락을 제대로 까는 듯한 소리수 많은 사람들의 촛불 집회가 PD 수첩 때문 이다 라는 논리도 어이없지만너무 당연한 얘기 조차 죄 처럼 포장 하는데 질려버리기 일보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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